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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타선을 7이닝 묶은 투수는 프로가 아니었다

스포츠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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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에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그 선수의 야구 인생까지 끝나야 할까.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에 금메달과 함께 이런 질문도 남겼다.

류지현(55)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꺾었다. 2010 광저우를 시작으로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3년 치러진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5회 연속 정상이다.

위기는 슈퍼라운드에서 왔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가장 큰 고비는 25일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1차전이었다. 한국은 0-5로 완패했다.

100% 프로 선수로 구성된 한국 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봉쇄한 투수는 NPB 선수가 아니었다. 일본 사회인야구 오지 소속 좌완 히구치 신(24)이었다. 그는 시속 150㎞를 넘나드는 구속 대신 정교한 제구와 완급조절로 한국 타선을 요리했다. 이 활약으로 히구치는 10월 열릴 NPB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회인'이라는 이름의 엘리트 무대

일본에서 사회인야구라 부르지만, 한국에서 떠올리는 직장인 동호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토요타자동차, ENEOS, 일본생명, 일본제철, JR 등 기업에 소속돼 급여를 받으며 높은 수준의 훈련과 전국대회를 소화하는 엘리트 야구의 한 축이다.

프로로 이어지는 통로도 탄탄하다. 일본야구연맹(JABA) 공식 발표와 NPB 드래프트 집계를 종합하면 2021년과 2022년 각각 15명, 2023년 14명, 2024년 13명, 2025년 12명의 사회인 선수가 NPB 지명을 받았다. 최근 5년간 단 한 해도 두 자릿수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1순위도 꾸준히 배출된다. 2022년 도시바의 요시무라 고지로(28·야쿠르트), 2023년 ENEOS의 와타라이 류키(24·요코하마)가 각각 1순위 지명을 받았다. 2024년에는 NTT서일본의 이하라 다카토(26·한신)와 미쓰비시중공업West의 다케다 유(27·요코하마)가, 지난해에는 사기노미야제작소의 다케마루 가즈유키(24·요미우리)가 1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대학은 4년, 사회인은 3년"

사회인야구를 프로 진출의 전략적 경로로 택하는 선수도 있다.

와타라이는 요코하마고 3학년이던 2020년 지명을 받지 못하자 대학 대신 ENEOS를 선택했다. 이유는 오히려 프로에 더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본 스포츠 매체 넘버와의 인터뷰에서 1년이라도 빨리 프로에 가고 싶었고, 대학은 4년이지만 사회인이라면 3년이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3년 동안 타격 파워와 콘택트 능력을 키우고 내야뿐 아니라 외야 수비까지 익힌 그는, 2023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와 주니치, 롯데 등 3개 구단이 1순위로 경쟁하는 선수가 됐다.

요시무라는 다른 길이었다. 대학 졸업 당시 지명을 받지 못해 도시바에 입사했고 1년 차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겪었다. 재활하며 몸과 투구폼을 다시 만들었지만 2년 차 드래프트에서도 호명되지 않았다. 한 해를 더 준비한 끝에 2022년 야쿠르트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제도 자체가 성장할 시간을 보장한다. NPB 공식 규정상 일본야구연맹 소속 선수는 등록 후 2시즌 동안 NPB 구단과 계약할 수 없고, 고교 또는 중학교 졸업 선수는 그 기간이 3시즌이다. 고졸이면 최소 3년, 대졸이면 통상 2년을 사회인 무대에서 쌓은 뒤 다시 프로에 도전하는 구조다.

"한두 해 늦게 피었다고 끝나선 안 된다"

경기를 지켜본 이만수(68) 전 감독은 결과보다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이번 일본 대표선수들이 흔히 생각하는 사회인야구 선수들이 아니며,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실업야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열아홉, 스무 살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며 조금 늦게 성장하는 선수도 있고 스물두세 살이 되어서야 자기 야구를 찾는 선수도 있다고 했다. 한두 해 늦게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그 선수의 야구 인생까지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4년이 필요한 선수였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 우완 박정민(23)은 장충고 졸업 당시 지명을 받지 못했지만, 한일장신대에서 4년을 보낸 뒤 2026 KBO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4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박정민은 올해 인터뷰에서 돌아보면 자신은 4년이 필요한 선수였다고 말했다. 저학년 때는 구속, 3학년에는 변화구와 경기 운영, 4학년에는 커맨드를 집중적으로 다듬었다. 4년이 있었기에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대학야구는 고교 시절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의 재도전 무대 정도로 평가절하되곤 했다. 현장에서는 좋은 원석은 이미 다 프로에 갔다는 자조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 9월 열린 2027 KBO 신인드래프트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체 110명 중 고교 선수가 87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대학 선수도 22명이 지명을 받았다. 이 가운데 4명은 졸업 전 도전한 얼리드래프트 참가자였다. 대학 진학이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으나, 고교 시절 한 차례 평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던 가능성이 몇 년 뒤 꽃피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대학 다음의 길

염경엽(58) LG 트윈스 감독은 지난 5월 실업야구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가장 좋았던 점이 졸업하면 100% 취업이었다는 것이라며, 프로에 갈 사람은 프로로 가고 실업에 갈 사람은 실업으로 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실업야구를 활성화하면 훨씬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독립리그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짚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 야구도 하고 주말에 경기를 치르거나, 경기가 있을 때는 오전 근무 후 오후에 훈련하는 방식이 과거에 실제로 있었다는 설명이다.

석 달 뒤에는 육성 문제도 언급했다. 재능이 있어도 기본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연속성이 나오지 않으며, 아마추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본기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대학과 실업에서 기본기를 쌓은 선수들이 프로 입단 직후 1군 경쟁을 했지만, 최근에는 입단 후 기본기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기업 하나가 다 떠안을 필요는 없다

물론 과거의 실업야구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답은 아니다. 기업에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는 지속되기 어렵다.

일본야구연맹은 기업이 사회인야구단을 운영하는 의미로 임직원의 사기와 일체감 향상, 회사와 지역사회에 기여할 인재 육성, 지역 스포츠 발전과 사회공헌을 꼽는다. 도시대항전에서는 임직원뿐 아니라 가족과 거래처, 지역 주민까지 회사 이름 아래 함께 응원한다. 야구교실 같은 지역 활동도 기업팀의 중요한 역할이다.

거대 기업 하나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4월 일본야구연맹 소개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한 오이타현 사이키시 경식야구단은 지역 기업 12곳이 만든 협동조합이 선수를 고용한 뒤 건설회사와 병원, 슈퍼마켓 등에 보내 일하게 하는 구조다. 기업은 젊은 인력을 얻고, 선수는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과 야구를 이어갈 환경을 얻는다. 지역은 젊은 인구 유출을 막는 효과를 기대한다.

1000만 관중, 그다음은

이런 논의를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기도 드물다. 2026 KBO 리그는 지난 8월 역대 최소인 565경기 만에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2024년과 지난해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3시즌 연속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이 전 감독은 일본 야구를 그대로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일본처럼 기업이 선수를 받아 급여를 주면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실업야구의 길이 다시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과 실업팀에서 더 배우고 성장해 다시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한국 야구를 발전시키는 길 중 하나이며, 고교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실업으로, 다시 프로로 이어지는 길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의 드래프트가 한 선수의 야구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 구조. 조금 늦게 피는 꽃도 기다려주는 야구가 결국 한국 야구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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